슬슬슬렁슬렁
할머니는 다시 아이가 됐다. 본문
부산할머니를 뵙고 왔다.
아빠가 큰 수술을 앞두고 할미얼굴이 보고싶었나보다.
부산 간다고 하길래 언니랑 조카들도 간다 하길래 우리도 얼른 따라 붙었다.
오후에 출발해 바닷가앞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요양원으로 가서 정말 할머니 얼굴굴만 뵙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일정
그렇게 맘 먹고 가려고 할 때는 안가지더니
아빠 혼자 훌쩍 떠난다고 하니 그날 바로 결정하고 동행하게 되네
역시 시간없다 바쁘다는 건 그저 이 손녀의 핑계였구만.

우리 두찌 쟈니 태어나서 처음 뵙는 왕할미
할머니의 치매기는 호전되지 않고 몇년전 봤던 그대로였다.
재차 묻는다
'니 누고?'
'할미 손녀 **이요!'
'맞나? 옆에는 니 아가?
'네~'
'아들하나 딸하나가?
'네~'
'영판 됐다.'
짧게 조우할 줄 알았는데 급 외출을 하게됐다.
모시고 근처 식당을 가기로 했다.

지금생각하면 좀 무모했다.
거동도 불편한 90 다된 할머니 모시고 너무 멀리 간듯
방지턱 지날때마다 곡소리 났다.
비는 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짐

작은아빠도 아주 오랜만에 봤다.
조카사위도 있고 조카손주들 4명이나 달고 왔으니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셨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고스락
뷰가 정말 예뻤던 기장군 식당
개별룸이 있어서 가족모임, 회식 등에 너무 잘 맞는 식당이다.
떡갈비도 너무 맛있었다.

시끌벅적 아이들 4명이 있었지만 개별룸이라 눈치가 안보이고
좋았다.
와중에 할머니는 또 우리 남편을 가리키며 '누고?' 묻는다.
'할머니 오는 내내 누구냐고 물어봤어요. 세보니 20번은 넘게 물어본거 같아요'
작은 아빠 왈 '니도 어렸을때 그랬다.' '원래 나이들면 다시 얼라 되는기라'
나도 그랬을거다.
같은 질문을 수도없이 반복했겠지.
치매가 있는 할머니의 반복되는 질문에 남편앞에서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지던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식사만 하시고 바로 요양원으로 돌아가셨다.
원래는 차라도 하려고 했건만...
자리를 옮기려 부축을 하는데 거동이 이상했다.
바지에 실례를 하신 것
순간 너무 당황했다.
내가 화장실을 가서 씻겨드려야 하나. 바지가 없는데
그렇다고 아빠나 남편이 뒷처리를? 안된다.
그렇지만 내가 할머니를 부축하기엔 역부족인데
짧은 시간 목뒤로 땀이 주르륵~
결국 작은 아빠의 빠른 판단으로 바로 요양원으로 모시고 돌아감
가끔 우리 두찌 똥기저귀를 가는데
애가 기저귀에 손을 넣어 똥묻는 손을 내보일때가 있다.
기겁하면서 욕실 데려가 씻기는 와중에 똥묻은 손으로 비누며 치약이며 손 닿는대로 만지는 둘째를 보며
깊은 화가 단전에서 올라올 때가 있다.
아이는 해맑게 웃는다.
그저 이 상황을 다 아는 나만 화나고 짜증날뿐
나도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될까?
상황파악하지 않고 같은 질문을 백번하게 되고
나의 똥기저귀를 내 자식들이 갈아줄 수도 있을까...?
그렇게 해줄까?
생각하니까
암것도 모르는 17개월 두찌 똥싸고 사고친다고 짜증내고 화냈던 내가 또 부끄러워지네


오랜만에 찾은 부산인데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아쉬웠다.
나 : '할머니가 민망해 했겠다.'
언니 :' 보는 우리들은 마음이 안좋지만 할머니는 그런 인지도 못하신거 같아'
함미~
우리 함미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자서전으로 만들어도 책 한권이 나올거다.
아주 어릴 적 625 전쟁을 겪고 결국에 살아남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시고
울 아빠 4살때, 막내 작은아빠가 뱃속에 있을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빠 얼굴도 기억못하는 울 아빠
그리고 뱃속에 아이를 품은 채 남편 장례를 치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홀몸으로 아들 셋을 억척같이 키워내신 부산 할머니
장남인 우리 아빠 초등학생 공부하던 중 서울로 올라와 기술을 배우고
그렇게 영영 서울에 살게 된다. 청년이 되고 엄마를 만나 우리 4남매를 낳으셨다.
내가 6학년 되던 해 IMF가 터졌고 잘 살던 우리집도 부도를 맞게 됐다.
그때 아빠는 우리 4남매를 할머니가 살고 계신 부산에 등산길 초입의 초가집 집에 1년간 맡기셨다.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4남매를 또 키우심
가끔은 할머니가 625때 얘기, 본인 어렸을 때 기억, 할머니의 아빠 얘기 가족얘기를 들려주셨다.
10살도 안됐을 때 집에 할머니밖에 없는데 손님이 찾아오셔서 급하게 식사를 준비했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랴부랴 반찬과 국을 준비해 차리고 보니 9첩반상을 차렸더라는 얘기는 왜 아직도 기억에 남을까... (자기는 열살때 그렇게 차렸는데 너는 6학년이나 되어서 아무살림도 못하냐며 핀잔을 주셨다ㅋ)
그리고 일본말을 잘 했던 할머니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할머니는 왜이렇게 일본말을 잘해? 물으면
일본말을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던거 같다.
엄마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울아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마음
나도 나중에 늙으면 아빠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58년 개띠 베이비 부머 세대의 고생은 아주 유명하고 사실이다.
요즘 론이 쟈니 재롱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아빠와 할머니를 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글로 남겨놓고 싶어 끄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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